당뇨병은 증상이 나타나면 이미 상태가 나빠진 것이라 '침묵의 살인자'라고도 불립니다. 그런데 애초에 왜 혈당이 오르는 것이 몸에 나쁠까요?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가능한 한 알기 쉽게 알려 드립니다.
당뇨병이 생기는 과정
우리가 음식을 먹으면, 소화 기관은 음식에 들어 있던 포도당(설탕)을 핏속으로 옮깁니다. 그리고 인슐린이라는 호르몬이 세포들에게 문을 열라고 신호를 보내고, 혈액에 있는 포도당을 세포로 밀어 넣어서 에너지로 쓰게 합니다.
당뇨병은 이 과정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제1형 당뇨병의 경우, 인슐린 자체가 충분하지 않은 것이 문제입니다. 제2형 당뇨병의 경우, 인슐린 저항성이라는 것이 생겨서 인슐린이 더 이상 세포에 포도당을 밀어 넣기가 힘들어진 것입니다.
- 제1형 당뇨병: 인슐린이 부족하다
- 제2형 당뇨병: 세포가 인슐린에 잘 반응하지 않는다
범인은 인슐린 저항성
전체 당뇨병 중 90%는 제2형입니다. 즉 대부분의 경우 문제는 인슐린 저항성이라는 뜻입니다.
그럼 왜 세포가 인슐린의 신호를 듣지 않게 되었을까요? 수십 년에 걸쳐 당질을 너무 자주, 너무 많이 섭취했기 때문입니다. 아까 밥 먹었는데 또 먹으라고 인슐린이 자꾸만 귀찮게 하니까 세포들이 점점 내성이 생기고 반응하지 않게 된 것이죠. 마치 철도 옆에 살면서 늘상 기차 소리를 듣다 보면 시끄러운 소리에 점점 무뎌지는 것과 비슷합니다.
당뇨병 환자가 극심한 피로감을 느끼는 것은 이런 이유입니다. 혈중에 포도당은 넘치는데, 인슐린이 제 역할을 못 하니 세포로 에너지가 들어오지 않는 것입니다.
끈적해지는 피
시럽을 만져 보거나 콜라를 옷에 쏟아본 적이 있나요? 끈적끈적한 느낌이 들지요. 이처럼 설탕이 액체에 녹으면 끈적끈적해집니다. 피에 설탕이 녹았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혈액에는 수분이 많습니다.
필요 이상의 혈중 포도당은 당화라는 과정을 통해 핏속의 단백질과 지방에 달라붙습니다. 혈당 수치가 높은 경우 혈액은 말 그대로 시럽처럼 됩니다.
사실 당화혈색소(HbA1c) 검사가 바로 이것을 측정하는 것입니다. 끈적끈적한 헤모글로빈(적혈구)이 얼마나 있는지 측정하는 것입니다. 채혈 검사를 해보면 혈중 포도당 수치를 알 수 있지만, 당화혈색소 검사를 해 보면 지난 3개월 동안 혈당 조절이 얼마나 잘 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혈액이 시럽처럼 끈적해지면 혈압이 높아지고, 혈관에 손상이 일어납니다. 따라서 우리 몸은 열심히 혈당을 배출하려고 애씁니다. 당뇨 초기에 소변이 자주 마렵고 심하게 갈증이 나는 것은 우리 몸이 갈 곳 없는 설탕을 물로 씻어내려고 노력하는 과정인 것입니다.
그 후 일어나는 일
때로 고혈당의 위험을 설명하기 위해 쓰이는 비유가 있습니다. 당뇨에 걸리면 설탕이 혈액 속에서 날카로운 결정이 되어서 혈관이나 세포를 베이게 해서 손상을 유발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만성적인 고혈당 상태로 인해 세포와 혈관에 느린 손상이 쌓이는 것은 사실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높은 혈당은 특히 가느다란 모세혈관이 많이 모여 있는 눈이나 신경과 같이 잘 재생되지 않는 신체 부위에 장기적인 손상을 일으키게 됩니다.
사실 이때 발생하는 일은 매우 느린 산화 반응입니다. 고혈당에 의해 AGE(최종 당화산물, Advanced Glycation End-products)라고 하는 부산물이 체내에 형성되는데 이것이 실제로 몸에 피해를 입히는 것입니다. AGE는 당과 단백질이 결합하면서 나타나며 눈 문제, 신경 문제, 신장 문제 등 당뇨병 말기에 나타나는 많은 증상이 AGE와 관련이 있습니다. AGE는 만성 염증을 일으키는 노화의 주범이기도 합니다.
AGE는 신체 여러 조직과 만나서 손상을 일으키는데, 처음에는 느끼지도 못할 정도로 작은 손상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쌓이고 쌓여 심각한 증상으로 발전합니다. 그래서 장기적인 증상이 일단 나타나고 보면 손을 쓰기에는 너무 늦은 뒤인 경우도 있습니다.
한편 수수께끼인 것은 일부 AGE는 신체에 별다른 해를 끼치지 않으며, 어떤 당뇨병 환자는 혈당이 조절되지 않는데도 말기 증상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떤 차이로 이런 일이 발생하는지는 아직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정리하면 고혈당이 몸에 해로운 단계별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1단계: 당질 섭취를 너무 자주, 너무 많이 한다.
- 2단계: 인슐린 저항성이 생겨 세포들이 포도당을 거부한다.
- 3단계: 혈당이 높아진다.
- 4단계: 혈관이 손상되고 혈압이 높아진다.
- 5단계: AGE가 몸에 각종 피해를 입힌다.
- 6단계: 눈, 신경, 신장 문제 등 말기 증상으로 이어진다.
결론
혈당이 정상 수준일 때 우리 몸은 대개 문제 없이 여분의 포도당을 처리하고, 혈당 수치를 아주 좁은 적정 수준 안쪽으로 세밀하게 관리하면서 당화 과정과 AGE 형성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태가 심각해지기 전에 문제를 예방할 필요가 있습니다. 혈당이 너무 빨리 치솟거나 만성적인 고혈당 상태에 이르지 않도록 신중하게 몸을 관리하며 생활 습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특히 간헐적 단식이나 정제 탄수화물이 적은 식생활은 문제의 근본 원인인 인슐린 저항성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 글이 도움이 되셨다면 아래 링크에서 다른 글들도 읽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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