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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주의' 뜻 | 왜 PC하다는 말이 욕이 되었을까?

by 비타로그 2023. 1. 29.

PC하다는 말은 본래 politically correct, 즉 '정치적으로 올바른'이라는 뜻입니다. 한국에서는 PC주의나 PC 사상(?) 같은 식으로 쓰이지만 사실 원래 정치적 올바름은 하나의 사상은 아닙니다. 이 글에선 PC의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본래 PC의 의미

정치적 올바름(PC함)이란 특정 그룹에 대해 배제적이거나, 폄하하거나, 차별하는 언어와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그 집단이 역사적으로 불이익을 받아 왔거나 차별을 당한 바가 있는 경우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흑인 등 유색인종, 여성, 성소수자, 어린이, 또 한국이라면 지역 차별의 대상이 되었던 전라도민 등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 버스에 흑인을 태우지 않는 것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습니다.
  • 갓 입사한 신입 여성 직원에게 남성 상사의 술을 따르게 시키는 것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습니다.
  • 유럽인이 한국인을 보며 눈을 양옆으로 찢는 시늉을 하는 것은 PC한 행동이 아닙니다.
  • 전라도 사람을 두고 면전에서 뒤통수를 잘 친다는 말을 하는 것은 PC하지 않습니다.
  • 미국 원주민을 '인디언'이라고 부르는 것은 PC하지 않습니다(이들은 인도 사람이 아니기 때문).

 

요컨대 정치적 올바름이란 다른 사람을 차별하지 말고, 상처 입힐 만한 언행을 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이는 그 자체로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왜 정치적 올바름이 PC주의PC 사상이니 하는 레이블이 붙어 욕을 먹게 된 것일까요? 사실 이건 국내에서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PC가 욕을 먹게 된 이유

PC함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지만, 그것이 문화적으로 퍼져 나가는 과정에서 그것이 다소 과도하게 사람들의 기존 표현을 검열하고, 가르치려 들며, 위선적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부분들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너무 과민하게 굴면서 자신의 가치관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시도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게임-포스포큰의-주인공-캐릭터.-흑인-여성이다.
게임 '포스포큰'

 

예를 들면 정치적으로 올바르기 위해서는 흑인은 black people이 아니라 African-American(아프리카계 미국인)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미국 원주민은 Indian이 아니라 Native American(미국 원주민)이라고 불러야 하지만, 사실 아메리카라는 대륙 이름도 아메리고 베스푸치라는 유럽인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므로 그냥 부족명으로 불러 달라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불법 체류자(illegal alien)가 아니라 서류 미비 이민자(undocumented immigrant)라고 부르는 것이 정치적으로 더 올바른 표현입니다.

 

성소수자의 성적 정체성 부분으로 가면 사람들의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집니다. 이제까지 남자, 여자 두 가지 성으로 구분했던 범주 속에 동성애, 무성애, 범성애, 간성인 등 이런저런 다수의 성적 정체성을 추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적 끌림과 정서적 끌림을 구분하면 더 복잡해지는데, 예를 들어 '헤테로섹슈얼 호모로맨틱'은 성적 끌림은 이성에게 느끼지만, 정서적 끌림은 동성에게 느낀다는 뜻입니다. 아마 지금도 새로운 성적 정체성은 계속 생겨나고 있는 중일 것입니다.

 

참고: '사피오섹슈얼' 무슨 뜻일까? 의미와 특징, 비판

 

이처럼 다양한 사람들의 소수자성과 정체성을 존중하려다 보니 원래 쓰던 말을 다르게 표현하거나, 우회적으로 말하거나, 기존에는 없었던 새로운 단어를 다수 추가해야 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냥 기존 단어를 써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쓰던 말을 계속 쓴 것뿐인데 '세상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갑자기 욕을 먹기 시작하므로 반발이 생길 수밖에 없지요.

 

여자란 무엇인가

최근에는 이런 시류가 지나치다는 점을 비꼬고자 길 가는 사람들에게 인터뷰를 청해 "여자란 무엇인가?"라고 묻기도 합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답을 피하거나 "여자가 무엇인가는 그 사람의 생각에 달려 있다"고 답합니다.

 

왜 그럴까요? 생식기 모양이나 성 염색체로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면, 남성의 생식기와 성 염색체를 가졌지만 자신을 여성으로 간주하는(혹은 그 반대인)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을 배제하게 되어서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PC함의 세계관 속에서는 성이란 더 이상 객관적인 무언가가 아니며, 자신을 어떤 성으로 규정할 것인가는 본인의 의사에만 달려 있는 것입니다.

 

영어로-된-만평.-정치적-올바름이라고-쓰인-옷을-입은-보완관이-표현의-자유를-권총으로-쏘아-죽인-후-미안하다고-말하는-장면이다.
정치적 올바름이 표현의 자유를 죽인다는 만평

 

콘텐츠 면에서도 정치적 올바름을 신경 쓰려다 보면, 소수자를 배제하지 않기 위해 다양한 성적, 인종적, 민족적 정체성을 가진 사람을 배역으로 채용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백인 남성들만이 중심인물로 나오고, 흑인이나 아시아인, 여성은 아예 나오지 않거나 주변적 인물이나 협력자, 적으로만 나온다면 이는 PC하지 않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미국 영화를 보다 보면 가끔 구색 맞추기 식으로 그룹 내에 흑인 게이아시아 여성을 넣어서 "우리는 백인 이성애자 남자만 넣은 게 아니다"라는 어필을 하려 하는 것을 종종 발견할 수 있습니다.

 

게임의 예를 들면 비교적 최근 사례로 블리자드사의 오버워치가 있습니다. 오버워치 캐릭터 중 트레이서는 레즈비언, 솔저: 76은 게이, 시메트라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것으로 설정이 되어 있습니다. 이에 대한 비판은 스토리와 무관한 소수자 설정을 넣어서 PC함을 어필하고 게이머들을 가르치려 드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물론 반론도 가능합니다. 애초에 오버워치가 그렇게 스토리가 중요한 게임도 아닐 뿐더러, 소수자 설정이 있는 것이 게임의 재미나 몰입을 해친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런 설정에 거부감을 갖는 것 자체가 소수자에 대한 그 사람의 편견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갈색-피부를-가진-여성-배우가-인어공주-역을-맡은-장면
갈색 피부의 인어공주

 

갈색 피부를 가진 배우가 인어공주의 에리얼 역을 맡은 것이 'PC 논란'을 촉발하기도 했는데요. 어떤 사람은 추억의 에리얼에 PC가 묻었다며 거부감을 보이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바닷속에 햇빛이 닿지 않는데 어떻게 어두운 피부를 가진 인어가 진화할 수 있느냐고 합니다(애초에 인어가 진화의 결과물이기는 한지가 의문이지만…). 한편 어두운 피부를 가진 어린이들이 새로 나온 인어공주를 보고 "나와 같다"면서 뛸 듯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영상도 있습니다.

 

정체성 정치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란 사회정치적 문제에 접근할 때 인종, 젠더, 성정체성 등 정체성을 결정하는 요인에 따라 특정 집단의 경험과 고유한 관점을 강조하는 태도나 이론을 말합니다. 정체성 정치는 사회 정의의 문제와 소외된 집단의 권리 및 경험에 관심을 둔다는 점에서 정치적 올바름과 연결점이 있습니다.

정체성 정치와 정치적 올바름은 본래 소수자를 포함한 모든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자는 뜻이 있습니다. 하지만 정체성 정치가 과도하게 강조될 때, 이는 사회의 통합이 아니라 분열을 야기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특정 집단의 정체성을 강조하고 이것을 중심으로 사고하다 보면 모든 인구가 어떤 정체성의 범주에 속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집단 간의 구분과 갈등을 유도한다는 것입니다.

 

소셜 저스티스 워리어

영어권에서 PC함을 중시하여 온라인에서 그것을 지적하고 싸우는 사람들은 SJW, 즉 Social Justice Warrior라는 일종의 멸칭으로 불립니다. 직역하면 사회적 정의를 위해 싸우는 전사라는 뜻이지만, 지금은 온라인에서 페미니즘이나 진보주의, 성소수자 지지 등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경멸적으로 일컫는 말이 되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PC충' 정도가 비슷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정치적 올바름이 비난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어떤 경우 그것이 실제로 자신이 얼마나 윤리적이고 약자를 배려하는지 어필하는 도구로 쓰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PC함을 덜 고려하는 사람들은 곧바로 그런 사람보다 윤리적으로 열등해지기 때문에, 화가 나고 방어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정치적 올바름을 주장하는 사람이 정말로 선량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선량함을 과시하고 싶은 것뿐인지는 사실상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정치적 올바름이 어디까지 선하고, 어느 경계부터 교조적이고 위선적인 것이 되는지는 이를 바라보는 여러 개인의 판단에 달려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 백델 테스트란?

1985년 미국 만화가 앨리슨 백델이 처음 만들어낸 것으로, 미국 영화가 얼마나 남성중심적인지 지적하기 위해 고안한 테스트입니다. 이 테스트를 통과하는 영화가 몇 안 된다는 것인데, 테스트 항목은 다음과 같습니다(최근에는 시대상을 반영하여 항목을 추가하거나 변형한 버전도 있습니다).

 

  • 이름을 가진 여성 캐릭터가 2명 이상이다.
  • 그 여성 캐릭터가 서로 대화를 나눈다.
  • 남성에 대한 것 말고 다른 이야기를 한다.

 

참고: 알이 아니었어? 성게알(우니) 효능, 영양성분 정리

참고: 프로틴(단백질) 보충제, 먹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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