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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의 마녀 12화 감상: 충격적인 1쿨 종료

by 비타로그 2023. 1. 8.

'기동전사 건담: 수성의 마녀' 1시즌이 12화로 완결되었습니다. 2시즌은 2023년 4월 매주 일요일 오후 5시에 방영된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오랜만에 정말 재미있게 본 애니고, 이번에 떡밥도 많이 뿌려져서 2쿨 방영을 많이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수성의 마녀 12화를 보고 나서 느낀 감상을 담고 있으므로, 당연히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직 12화를 보지 않으신 분은 먼저 시청하신 후에 글을 읽으시기를 권장합니다.

 

 

1. 프로스페라의 가스라이팅 씬

이번 에피소드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것은 레이디 프로스페라가 슬레타를 구한 뒤에 이어지는 가스라이팅(?) 씬입니다. 작품 초기부터 슬레타가 어머니의 복수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은 많이 나왔죠. 프로스페라가 슬레타의 이름을 부르거나 딸이라고 하지 않고 꼭 '그 아이'라고 부르거나 에어리얼과 묶어서 '딸들'이라고 부르는 것도 수상한 부분이었고요.

 

슬레타의 목숨이 위험할 때 프로스페라는 총격전으로 침투한 강습대원들을 사살하고, 부드럽지만 단호한 말투로 모두를 구할 수 있는 건 슬레타와 에어리얼뿐이라고 강조합니다.

 

 

정말 탁월한 연출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깨달음을 주는 교훈적인 장면이라도 되는 것처럼 잔잔한 뉴에이지풍 피아노 BGM이 깔리고, 프로스페라는 너무 달콤한 목소리와 설득력 있는 말투로 한마디 한마디 맞는 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죠. 그리고 이 말들을 들은 슬레타는 혼란스럽고 불안했던 표정이 사라지고 희망을 얻은 듯 다시 눈에 빛이 깃드는 모습입니다.

 

선을 넘는 슬레타

 

하지만 이렇게 나아가기로 결심하고 다시 일어선 슬레타는 라스트 씬에서 모기 잡듯 주저없이 살인을 저지릅니다. 그것이 '전진하면 둘'을 얻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요.

 

아마도 제작진은 이런 혼란스러움을 부르는 연출을 의도적으로 사용했을 것입니다. 이제까지도 주도면밀하게 의도적인 연출을 해온 것을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지요. 이 장면은 그림으로 그린 듯한 '알기 쉬운 악인'을 보여주지 않겠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현실에서 우리가 실제로 마주할 악은 이런 모습을 하고 다가올지도 몰라~ 하고 알려주는 듯합니다.

 

가랏 너구리

 

실제로 레이디 프로스페라가 악인인지 아닌지 우리는 아직 모릅니다. 혈육을 포함한 타인을 조종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나 비밀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야기 속에는 교활한 정의의 편도 등장하기 마련이니까요. 프로스페라가 하는 말들 속에도 일말의 진실은 담겨 있고요. 이처럼 입체적이고 매력 있는 인물들을 볼 수 있는 것만 해도 '수성의 마녀'를 챙겨볼 이유로는 충분하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는 '수성의 마녀' 진 주인공 포지션에 프로스페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후 전개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2. 야메나사이

11화에서 로맨틱한 화해를 나누는 풋풋한 백합 커플을 보여주고는 곧바로 이런 식으로 둘의 관계를 크게 일그러뜨리는군요. 자극적이고 잔혹한 연출이라 비난도 많은 것 같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나름대로 선을 지키는 고자극 씬이어서 좋았습니다.

 

토베루. 오도레루. 코로사레루.

 

초반의 '수성의 마녀'는 우리 이제 10대를 타깃으로 해서 순한 맛 건담으로 갈 거라는 식으로 나왔죠. 새콤달콤 백합 청춘물에 학생 창업 스토리까지 다 좋았는데, 그 와중에 이면에 있던 심상치 않은 현실(이를테면 4호의 정체와 죽음)이 슬쩍슬쩍 비치다가, 마침내 그것이 와장창 덮쳐 오면서 두 현실 사이의 낙차로 시청자를 멘붕시켜 버립니다. 이 솜씨가 정말로 달인이구나 싶을 만큼 뛰어났다고 생각합니다. 순한 맛은 무슨…… 😂

 

총격전이나 우주 전투에서 전투원이 죽는 모습은 기대에서 별로 어긋날 것이 없고 익숙합니다. 죽네~ 정도의 덤덤한 반응을 불러일으키죠. 반면 12화 마지막 장면에서 슬레타의 '야메나사이'는 매우 불쾌하고 충격적으로 다가옵니다. 이는 모빌슈트와 인간의 크기 차이를 부각한 묘사도 그렇지만, 그 이후에 콕핏에서 나온 슬레타의 밝고 순진무구한 태도와 잔혹한 살인 방식 사이의 크나큰 낙차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봅니다.

 

슬레타의 성우분은 라디오를 통해 "슬레타는 미오리네가 자신을 칭찬해줄 거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답니다. 열심히 달려와서 신부의 목숨을 구해준 것이니까요. 실제로 콕핏에서 내린 슬레타의 태도를 보면 딱 그런 느낌입니다.

 

하지만 미오리네는 명문가 아가씨라 한들 현실을 볼 줄 아는 사람이죠. 방금 같은 스케일에 있었던 사람이 자기 회사의 모빌슈트에게 압사당한 직후고요. 너 방금 살인을 저지른 거라고 슬레타에게 명확하게 알려줍니다.

 

슬레타에게도 할 말은 있습니다. 방금 프로스페라에게서 "그러지 않았다면 네가 죽었다"는 가르침을 받고 온 상태니까요. 이처럼 프로스페라의 살인과 슬레타의 살인은 닮은 꼴로 이어져 있습니다. 과연 시즌 2에서 이들은 어떤 대화를 나눌까요? 또 이들의 관계는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입니다.

 

 

한편 이 장면에서 사람을 구하고 생명을 살리는 건드 포맷이라는 대의명분은 크게 흐려졌습니다. 오히려 프롤로그에서 델링이 주장했던 건드 포맷의 위험성에 설득력이 실리게 되었습니다. 이유가 있었다고는 해도 사람을 살상하는 주역 기체가 된 건담 에어리얼, 이 상황을 제작진은 어떻게 풀어갈 생각인지도 주목할 부분입니다.

 

3. 구엘, 니카, 지구의 마녀들

사실 다른 장면들도 단독으로 보면 충분히 무게감 있는 떡밥을 던졌는데 마지막 장면의 충격으로 다 날아가버린 감이 있지요.

 

구엘은 불가피하게 자기 손으로 아버지를 죽게 하고 말았습니다. 빔 제타크는 이상적인 부모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아들을 생각했던 인간적인 사람이기는 했습니다. 또 직접 콕핏에 탑승해 싸우러 나가는 등 남자답고 진취적인 모습도 보여주었고요.

 

과연 동생 라우더와 재회했을 때 구엘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 라우더는 아버지를 죽게 한 구엘을 용서할 수 있을까요?

 

빔 제타크의 최후

 

한편 니카는 지구의 테러리스트 세력과 교감하는 스파이 노릇을 하고 있었는데, 목숨을 구하려고 콜 사인을 찍다가 그 현장을 주식회사 건담 멤버에게 들키고 말았습니다. 니카가 이 혐의를 무마할 수 있을지, 아니면 주식회사 건담과 대립하는 처지에 놓일지 궁금하기 그지없습니다.

 

한편 메인 빌런일 줄 알았던 부모 세대 캐릭터들이 하나둘 탈락하거나 나름대로 선한 일면을 갖춘 인물들이라는 점이 비추어지면서 시즌 후반부에서는 지구의 테러리스트 집단이 새로운 적대 세력으로 부각되었습니다. 핵심이 되는 것은 역시 소피 플로네노레아 듀노크겠지요. 이 둘은 머리색만 봐도 슬레타와 미오리네 커플에 대응하도록 디자인한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지구의 마녀들

 

건담이니까 이들도 절대악은 아니겠지요. 절대적인 정의도 악도 없고 각자 나름의 이유와 명분이 있는 것이 건담 세계관의 전쟁이니까요. 시즌 2에서는 추측컨대 본격적인 지구 세력과 주식회사 건담의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을까 합니다. 이르지만 이 모든 매력적인 인물들이 슈로대 세계관에 들어가는 것도 벌써부터 기대가 되네요.

 

그럼 수성의 마녀 12화 감상은 여기서 마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참고: 뉴진스 'OMG' 뮤비 의미 해석
참고: 혈당이 오르면 해로운 이유, 쉽게 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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