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의 위대한 철학자 쇠렌 키에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는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이다(Angst er frihedens svimmelhed)"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이 한 문장은 짧지만, 인간 실존의 핵심을 꿰뚫는 깊은 통찰을 담고 있지요. 대체 자유가 어떻게 우리에게 현기증과 같은 불안을 안겨준다는 것일까요?
절벽 끝에 선 인간: 공포와 불안의 차이
먼저 키에르케고르가 말하는 '불안'이 우리가 일상적으로 느끼는 '두려움'이나 '공포(fear)'와는 다르다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는 이 둘을 명확히 구분했습니다. 공포는 그 대상이 명확합니다. 가령, 사나운 개를 마주쳤을 때, 험난한 산을 오를 때,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대상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로부터 도망치거나 맞서 싸우는 등 구체적인 대응을 할 수 있지요.
하지만 불안(anxiety, Angst)은 다릅니다. 불안의 대상은 '없음(nothingness)', 즉 '무(無)'입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아찔한 비유를 듭니다. 한 남자가 높은 절벽 가장자리에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그는 발을 헛디뎌 떨어질까 봐 '공포'를 느낍니다. 이는 절벽 아래라는 구체적인 대상이 있는 공포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그는 또 다른 종류의 감정에 휩싸입니다. 바로 자기 스스로 절벽 아래로 뛰어내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깨닫는 것입니다. 외부의 위협이 아니라 자신의 자유의지로 끔찍한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는 순간, 그는 현기증과 같은 아찔함을 느낍니다. 이것이 바로 키에르케고르가 말하는 '불안', 즉 '자유의 현기증'입니다.
무한한 가능성, 그 앞에서 느끼는 어지러움
자유롭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우리 앞에 무한한 선택의 가능성이 펼쳐져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이 얼마나 가슴 벅찬 말인가요? 하지만 키에르케고르는 바로 이 '무한한 가능성' 자체가 불안의 원천이라고 보았습니다.
과거의 동물이나 순진무구한 상태의 인간은 불안을 모릅니다. 그들은 정해진 본능과 규칙에 따라 살아가기 때문이지요. 선택의 여지가 없으므로 자유도 없고, 따라서 자유에서 오는 현기증도 경험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의식을 가진 인간은 다릅니다. 우리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져야 하는 존재입니다. 어떤 대학에 갈지, 누구와 결혼할지,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살지, 이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해야 합니다. 이 선택의 갈림길에서 우리는 '다른 길을 갔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 즉 실현되지 않은 수많은 가능성을 마주하게 됩니다. 바로 이 가능성의 심연을 내려다볼 때, 우리는 마치 절벽 아래를 보듯 어지러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내가 나의 자유로 어떤 선택이든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우리를 압도하고 마비시키는 셈입니다.
아담의 불안, 그리고 우리의 불안
키에르케고르는 창세기의 아담 이야기를 통해 이 개념을 더욱 깊이 파고듭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명령했을 때, 아담은 '선'과 '악'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그는 순진무구한 상태였지요. 하지만 그 금지 명령은 아담에게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습니다. 즉, '명령을 어길 수 있는 가능성' 말입니다.
아담은 선악과를 먹는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몰랐지만, 자신이 그것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는 사실 자체에서 불안을 느꼈습니다. 이 불안은 죄 자체는 아니었지만, 죄를 향한 첫걸음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자유의 현기증 속에서 스스로 선택하는 '도약'을 통해 죄를 짓게 됩니다. 키에르케고르는 모든 인간이 각자의 삶에서 이와 같은 아담의 경험을 반복한다고 보았습니다. 우리는 모두 순수함의 상태에서 자유의 가능성을 깨닫고, 불안 속에서 자신의 길을 선택하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이지요.
불안을 마주한다는 것의 의미
그렇다면 이 현기증 나는 불안은 그저 피해야 할 고통일 뿐일까요? 키에르케고르는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는 오히려 "불안을 올바르게 배우는 사람은 최고의 것을 배운 것"이라고 역설했습니다.
불안은 우리가 동물이 아니라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영적 존재임을 일깨워주는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불안을 회피하고 가능성의 무게로부터 도망치려는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반면, 자신의 자유와 그로 인한 불안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사람만이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서 바로 설 수 있습니다. 불안이라는 현기증은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우리를 더 깊은 자기 인식과 성숙으로 이끄는 통로가 되는 셈입니다.
결국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이다"라는 말은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딜레마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유롭기에 불안하고, 불안하기에 비로소 인간다운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깊은 역설인 것입니다. 까닭 모를 불안감이 밀려올 때, 어쩌면 우리는 절벽 끝에서 자신의 무한한 자유를 마주하고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참고: 80:20 법칙? '파레토 법칙'의 의미와 활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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